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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을 나누다/[영화]네모로만 보이는 세상

설국열차

 

영화에는 감독의 색깔이 묻어 나온다.

그건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선택할 때 주연배우 외에도 꼭 감독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꼭 영화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봉준호 감독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로 데뷔한(사실은 '백색인(1994)'이 정식 감독 데뷔작) 그는 영화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여러편의 영화에서 다양하게 활동한 진짜 영화인이다.

대표작으로 '플란다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 '남극일기(2005)', '괴물(2006)', '마더(2009)' 등이 있는 그는 여러편의 영화 각본을 쓰고, 스탭으로서 활동은 물론 카메오 배우로도 출연했다. 

 

<설국열차>는 국내 감독이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서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등 헐리우드 스타들을 대거 캐스팅하고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 450억을 들여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봉전부터 관심이 컸던 작품이다.

물론 나같은 만화 애호가라면 원작 만화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중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극명하다.

솔직히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봉감독의 영화와는 달리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돈 많이 들인 대작이니 감독의 욕심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배우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서 너무도 친절(?)하게 교훈과 가르침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만화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봉준호의 꿈과 이상을 말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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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는 자크 로브가 시나리오를 쓰고 장마르크 로셰프가 그림을 그려 1984년 출간된 프랑스 만화가 원작이다. 이 만화는 세계적인 명성의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1986년에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만화는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진 대작으로 자크 로브가 죽자 뱅자맹 르그랑이 뒤를 이어 집필한 시리즈물 중 하나이다.

영화는 원작 만화와는 크게 다르다. 영화는 배경이 되는 기차, 꼬리칸과 앞칸의 대결 구도만 차용했을 뿐이다.

원작 만화는 영화처럼 기차의 꼬리칸 사람들과 앞칸 사람들과의 극한 계급 투쟁을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만화 내용은 대략 이렇다.

동서 냉전 시대, 기후 무기 사용으로 지구는 백색 설원의 빙하기를 맞는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은 1001량의 기차에 탑승한 체 농사, 식품 가공, 군사, 감옥까지 용도에 맞게 살아간다. 기차의 기관실과 가까운 맨 앞 황금칸 사람들이 기차의 뒤편 끝칸 사람들을 철저하게 지배하는 신 계급사회가 배경이다.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 설국열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황금칸 사람들은 무게를 덜기위해 꼬리칸을 떼어 버리려 한다. 이 사실을 안 주인공 프롤로프와 인권운동가 아들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앞칸으로 전진하면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고, 투쟁끝에 기관실에 도착한 주인공에게 엔진을 운영하는 알렉 포레스덱은 자신의 역할을 위임하는 것으로 만화(시리즈 3권 중 제 1권-탈주자)는 끝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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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를 막기위해 지구상의 나라들은 CW-7이라는 물질을 대량 살포하지만, 자연의 위대함에 도전한 인간의 오만은 오히려 지구 한냉화라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 모든 인류는 얼어 죽는다.

 이를 예견한 윌포드[에드 해리스]는 1년에 한번 지구를 순환하는 열차를 만들어 재력이 되는 사람들만 이 열차에 탑승 시킨다. 그러나 재력이 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이 마지막 화물칸에 무임 승차함으로써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계급적 갈등과 투쟁이 비롯된다.

 

설국열차에 탑승한 이들은 17년째 눈 덮힌 대륙을 무작정 달리고, 설국열차는 폐쇄된 생태계이자 새로운 계급사회로서 승객들은 정해진 계급에 따라 기차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꼬리 칸의 탑승자들은 단지 삶을 담보로 포로 혹은 노예처럼 그곳에서 엄격한 규율을 강요 받는다. 그들은 특별한 일은 하지 않지만 앞 칸에서 주어지는 단백질 블럭을 배급받아 살아가면서, 가끔씩 앞 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차출되거나 그들이 요구하는 아이들을 징발당한다.

이 모든 것들이 앞 칸 사람들의 호화생활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당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그들은 반란을 계획한다.

그리고 마침내 꼬리칸의 승객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가진자에 대한 반격을 계획한다. 그 반란의 배후에는 꼬리칸의 정신적 지도자 길리엄[존 허트]이 있다.

 

 

 

그들은 감옥 칸에 감금되어 있는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를 탈출시켜, 차례로 객차의 문을 열고 진격한다 . 하지만 크로놀(가연 · 폭발성 고체 물질)흡입에 중독된 남궁민수는 그들의 '혁명'에는 관심이 없고, 딸 요나[고아성를 새로운 기차밖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혈이 낭자한 열차칸의 진격은 계급사회와 혁명에 대한 은유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커티스의 반란군이 진격해가는 그곳, 칸칸이 나누어진 열차칸의 공간은 계급사회의 위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꼬리 칸의 반군들이 앞으로 전진하며 보게 되는 앞 칸의 모습은 실로 별천지이다.

정원과 교실 장면, 사우나 와 클럽 장면 그리고 앞칸으로 전진하면서 먹던 스시 장면 등은 한편으로 코믹하기까지 하다.

 

 

 

 

영화 초반에서 설국열차의 2인자 메이슨[틸다 스윈튼]은 꼬리 칸 사람들 앞에서 균형과 질서를 강조한다. 꼬리 칸 승객들은 열차에 대하여 아무런 권리도 가지지 못하며, 절대 권력자인 윌포드의 자비에 의해 살아남게 된 '잉여'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세계속에서 메이슨이 말하는 '균형과 질서'는 기득권자들을 위한 지배 논리의 위선일 뿐이다. 완벽하게 설계되어 윌포드에 의해 성스럽게 굴러간다는 그 엔진은 사실 꼬리 칸의 '잉여'들에 의해 공급되는 특정한 생체노동(강제로 차출되어 비좁은 기관실에서 일하는 어린 아이들)에 의존하는, 가장 약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굴러가는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인 것이다.

 

봉준호감독이 제시하는 혁명의 모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통치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 채 통치 주체만 바뀐 상태의 혁명이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일반적인 혁명의 모습이었다.

하나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혁명군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통치기구를 접수한 다음, 그 통치기구를 그대로 활용하여 혁명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주로 하는 개혁주의는 물론이고, 스탈린주의 국가권력의 해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통치주체는 바뀌었지만, 통치의 방식은 그대로인 상태. 사실 이것은 체제를 더 오래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된다.커티스가 마지막 엔진 칸에 도달했을 때, 그는 윌포드의 초대를 받는다. 그는 엔진이라는 권력을 향해 돌진했을 뿐, 그것을 탈취한 후 이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가진 것 전부를 몰수당한 채, 약자를 잡아먹는 인간이하의 상태에 내몰린 꼬리 칸에서 자신의 팔을 내주었던 '성자' 길리엄 역시 윌포드의 시스템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길리엄은 혁명도중에 이만하면 됐다고 말 한 적이 있다. 그가 윌포드와 내통해왔다는 말은 윌포드의 악의적인 과장일 수도 있지만, 길리엄이 윌포드의 수권자로서의 고뇌를 가장 잘 이해했다는 것만은 진실이다.커티스 역시 막상 권력 앞에 도달하자, 이 시스템을 윌포드와 다르게는 커녕 그 만큼이나 잘 운영해나갈 자신이 없다. 결국 그는 '권력을 잡고 나니 똑같아진 변절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피를 흩뿌렸던 장엄한 혁명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조절책일 뿐이었단 말인가! 이는 수많은 혁명이 실제로 봉착했던 역사철학적 딜레마이다. '아버지'를 죽이러 왔으나, 자신의 존재가 통째로 부인당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커티스는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그 균형과 질서에 순종하지 않는다.봉감독은 커티스의 혁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 속에서 두가지로 모습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통치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 채 통치 주체만 바뀐 상태의 혁명이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일반적인 혁명의 모습이었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아나키즘적인 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이상으로만 존재할 뿐 그 누구도 시도해 본 적없는 불확실한 미래이다.


 

영화의 엔딩처럼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틀 밖의 또다른 세상을 꿈꾸는 감독의 개인적 바램에 크게 공감한다.

올 여름 폭염에 지친 마음을 위해, 온통 세상이 하얗게 얼어붙은 설국 속으로 기차를 타고 떠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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