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펜 2013. 3. 4. 12:50

 지하철 3호선이나 4호선을 타고 충무로역에 내려 3번 출구와 4번 출구사이로 나오면 남산골한옥마을이 있다.

서울 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지역은 조선시대에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있던 곳으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 불렸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옛 정취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19세기 말에 지어진 전통한옥 다섯채를 옮겨 마을을 만들어 놓았다.

이들 한옥들은 집의 규모와 신분에 걸맞는 가구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의 뒷마당이다.

오위장은 조선시대의 군사조직의 하나인 오위의 최고직책으로, 품계가 종2품이었다가 정조때 정3품으로 격하되었다.

오위는 도성을 경비하고 순찰하는 등 주로 치안을 맡았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오위장이 군사를 이끌고 국왕을 사열˙시위하기도 하였다.

 

 

 

 이 집은 1890년 쯤 지은 것으로 원래는 삼청동에 있었던 것을 한옥마을을 만들면서 옮겨왔다.

대문을 ㄱ자 형태로 꺽어 드나들게 만든 점, 안채의 외벽이 골목과 만나기 때문에 상부에 높게 창을 내고 하부는 돌과 벽돌로 쌓아 담벼락을 겸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것은 점점 밀도가 높아지는 도시형 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집의 규모나 가구들을 볼 때 고위관료 양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다소 소박하게 보인다.

 

 

ㄱ자로 꺽어 드나들도록 만든 대문. 대문 양옆으로 행랑채가 붙어있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의 부엌 내부다.

특이하게도 부엌안에 맷돌이 놓여진 마루가 보이는데,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녀자에 대한 배려가 인상깊다.

 

 

 관훈동 민씨 가옥의 사랑채이다.

원래 이 집은 민영휘1(1852~1935)의 저택 가운데 일부분이다.

민영휘는 한말 대표적인 민씨 척당으로 일제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 인물이다.

 

 

 

 

 

 

민씨 가옥의 안채이다. 

원래는 관훈동 일대의 너른 땅에 별당채, 대문간채, 행랑채 등 여러채의 집을 지어놓고 일가붙이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 중 일부만 이 곳에 옮겨놓은 것이다.

집의 아주 일부만 옮겨 놓았는데도 탐관오리답게 집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뒷마당 장독대 옆에 김치움2도 보인다.

민씨 가옥의 부엌. 집의 규모만큼 부엌도 크고 넓다.

 

 광 속에는 각종 농기구와 살림용품이 보인다.

지게, 키3, 체, 절구, 멍석, 망태기, 빗자루, 똬리, 다래끼4, 낫,  등등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앞마당이다.

원래 이 집은 청계천의 삼각동에 있었던 것으로, 경복궁 중건공사(1865~1868)에 참여했던 도편수5 이승업의 가옥으로 한말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옥인동 윤씨 가옥이다.

이 집은 1910년 쯤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부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 윤덕영(1873~1940)과 그의 일가붙이들이 옥인동에서 살던 집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 구조로 지어진 집은 당시 최상류층 가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ㅁ자 구조의 집 한가운데에 위치한 안마당.

양반들의 자가용 가마다.

가마는 양반들만 사용할 수 있는데, 결혼식 때에 한해서 일반 평민들에게도 허용 되었다고 한다.

다섯 채의 한옥이 있는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다.

짚신을 비롯한 짚으로 만든 여러가지 물건들.

 주렁주렁 매달린 것은 다래끼보다 조금 작은 종다래끼.

허리에 매달거나 끈으로 어깨에 걸쳐메고 콩 ·팥 ·감자 등을 심을 때 씨를 여기에 담아서 메고 뿌릴 때 쓰기 때문에 종다래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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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혀 볼 수 없는 짚으로 만든 닭둥지가 보인다.

닭둥지는 닭이 잠을 자거나 알을 낳고 부화하는 장소로 쓴 일종의 닭의 침대이다. 

곡식 ·비료 ·소금 등을 담기 위해 짚으로 섬6처럼 만든 용기로 가마니라고 한다.

가마니는 새끼를 날줄로 하고 그 사이를 짚으로 촘촘하게 엮어 짠 일종의 자루로서 섬과는 달리 틈새가 조밀하여 곡식이 샐 염려가 없지만, 무겁고 만들기가 어려워 근년에는 마대(麻袋)나 비닐 포대로 바뀌고 가마니의 용량을 말하는 ‘가마’란 말만 남았다. 한 가마는 10말(180리터)로 쌀의 경우에는 80kg이다.

이것이 다래끼다.

발로 밟아 곡식을 찧거나 빻는 기구 디딜방아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안에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지게다.

짐을 얹어 등에지는 운반 도구로 우리 조상들의 우수한 발명품 중  하나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게는 지금도 우리말과 비슷한 시케이 또는 지케이라고 부른다.

 

 

  1. 민영휘(1852~1935):민씨 척당의 중심 인물로 1884년 김옥균의 갑신정변을 진압한 공로로 이후 도승지까지 승진한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여 동학농민군을 탄압하였다. 갑오개혁때 민씨 척족과 함께 실각, 탐관오리의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청나라로 탈출했다 일년 뒤 일본측의 농간으로 대원군측 이준용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사면을 받아 귀국했다. 1909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본문으로]
  2. 김치움: 주로 경기도 지방에서 쓰이며 김치광 또는 김치각이라 부른다. 김치독을 땅에 묻고 그 김치를 꺼낼때 외부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대형 덮개 [본문으로]
  3. 키: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 등을 골라내는 도구. 옛날에 어린아이가 밤새 이불에 오줌을 싸면 이것을 씌워 이웃집에서 소금을 얻어오도록 했다. 이때 소금을 받고 돌아가는 아이의 머리위 키를 막대기로 마구 두들겨 아이를 놀라게 하여 다음부터는 오줌을 싸지 않도록 했다.(민간요법) [본문으로]
  4. 다래끼: 짚이나 싸리, 대, 갈대 등으로 만든 아가리가 좁고 바닥이 넒은 작은 바구니. [본문으로]
  5. 도편수:목재 건축물을 만들 때의 최고 관리 감독 책임자. [본문으로]
  6. 섬: 곡물이나 사료 등을 담는 데에 쓰는 짚으로 된 그릇.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