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국회의원 선거 다음날, 총선 결과 때문에 다소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묘공원 주변 '벼룩시장'을 찾았다.
1호선 동묘앞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종로구 숭인동 동묘다.
동묘는 보물 제142호의 사적으로 동관왕묘의 약칭이다. 관왕묘는 중국 장수 관우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명나라의 요청으로 선조 34년(1601년)에 지었다고 한다.
평일인대도 동묘를 둘러싼 창신1동 주변은 각종 중고 물품을 팔사람, 살사람들로 붐볐다. 그렇지만 이 시장에는 중고품만 파는 것은 아니다.
창고에 오래동안 쌓아놓았던 재고품과, 유명 브랜드를 조잡하게 모방한 의류 신상품도 보인다. 아무튼 만물시장이 따로 없었다.
▼ 한편에서는 '동묘시장 자율위원'이라 쓴 완장을 찬 사람들이 나름대로 노점 시장의 질서를 위해 차량 안내와 통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흥길 작가의 소설 '완장'처럼 위압적이지는 않다.
▼ 카메라를 본 한 노점상인 다가와 거부감을 드러냈다.
얼마전 모방송에서 자신들을 불법자로 묘사하는 방송을 하는 바람에 신경이 날카로와 졌다.
▼ 거의 고물상에나 쌓여 있을 법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다.
손님이 찾지 않는 틈틈히 중고 물품을 닦고 고치는 게 노점 상인의 일과다. 대게가 몇 천 원에 거래되는 물건이지만, 운좋으면 이곳에서 만원으로 제법 괜찮은 보물같은 중고품도 구할 수도 있다. 애프터서비스는 글쎄... ...?
▼ 괜찮은 고서라도 있지 않을까 한참을 뒤적여 봤지만... ...역시 없었다.
지역 문인의 자작 동인 시집, 교회 회보집 등 정말로 진귀한(?) 책들이 많았다.
▼ 큰길 사이사이의 좁은 골목에도 노점이 즐비하다.
하지만 손님은 많지 않다. 경기가 안좋은 요즘은 이곳 중고시장도 경기를 많이 탄단다......
▼ 고물과 함께 방치된 어느 무명 작가의 작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슬퍼 보인다.
▼ 여기에 또 어느 화가의 유화 작품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미술 작품이 부자들의 투기 대상이 되어, 옥션에서 경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등 요즘 미술품 시장은 호황이다.
하지만 그건 유명 작가와 일부 사람들만 해당되는 얘기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빵과 바꾼 밀레의 그림처럼, 어쩌면 저 그림도 소주 한 병과 설렁탕 한 그릇 값으로 처음 세상에 나왔을 지 모른다. 그래서 아직 유명 그림장이가 아닌 나는 슬프다.
▼ 번데기의 어린 몸에 해당하는 누에. 누에는 참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고마운 생물이다.
▼ 올해로 아날로그 TV방송이 종료되는데, 저 아날로그 중고 TV는 이제 중고가 아니라 그냥 고물이 된다.
▼ 동묘시장 뒤 종로구 창신동 주택가. 나비의 꿈을 꾸는 번데기처럼 화려한 탈바꿈을 위한 재건축을 기다리는 마을이 있다.그러나 재개발·건축이 끝나고나서, 그들은 화려한 나비의 모습으로 이 곳에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
▼ 동묘(동관왕묘)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이다. 사진을 클릭해서 확대해 읽어보면 동묘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 의류 노점상의 덤핑 판매. 덤프트럭에서 유래된 덤핑 판매가 실감나는 모습이다. 옷이 산처럼 쌓여있다.
▼ 동묘앞역 큰길 건너편 골목길 사이로 종로구 숭인동 근린공원 동망정이 보인다 .
▼ 종로구 숭인동 근린공원 주변은 도심답지 않게 낡고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졌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좋다. 그렇지만 편리와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앞다투어 골목을 없애고 아파트를 세우며 도시를 치장하는 지금, 머지않아 이 골목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모던'과 '개발'이 도시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지금, 낡고 오래된 것, 사람 냄새 나는 곳은 도시미화의 적이기 때문이다. 일부의 품위를 위해 가난한 소수의 삶은 희생시켜도 좋다는 나라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서글픈 풍경이다.
▼ 골목길 뒤쪽 멀리 유명한 '창신동 돌산밑'이 보인다. '돌산밑'이란 돌로 된 산 밑이란 말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이곳에서 돌을 채석하다가 60년대 이후 사람들이 화강암 절벽을 깎고 넓혀 집을 층층이 지었다고 한다 .
▼ 숭인근린공원에서 내려다 보는 시내 전경.
▼ 동묘앞역 대로변을 마주보고 어제 치룬 총선의 승자와 패자의 인사가 내걸렸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렸던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정세균씨(통합민주당)와 홍사덕씨(새누리당).
승패를 떠나 정치인이라면 늘 민심 잊지 마시길…….
▼ 땅값 비싼 도심 한가운데 땅 종로에 3000원짜리 짜장면이 있다니…….
하지만 청계천을 끼고 오랫동안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었던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반신반의 속에 먹어 봤는데 진짜 맛있었다.
'삶=사람'이라고 말한 신용복교수님의 말을 생각하며, 도심속에서 만나는 재래시장과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걸으며 진정한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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