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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을 나누다/[여행]그곳엔 뭐가 있을까

암울했던 역사의 현장을 뒤돌아보다

 2011년 3월 2일 오후,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독립문 근처의 <서대문형무소역사전시관>을 찾았다. 어제가 3·1절이었던터라 나름 의미를 부여하며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해방 후 군사 독재 시절에는 수많은 민주 투사들이 고초를 겪었던 암울한 역사의 현장을 이제서야 찾아본 것이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사진을 거의 찍지 못해 자료가 거의 없지만, 꼭 한 번 둘러봐야 할 아픈 역사의 현장임을 다시 느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 전경이다.

1908년 10월 21일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다. 이후 이 곳은 수많은 독립투사와 민주열사들의 생지옥으로 악명을 높혔다. 현재는 형무소였음을 알리는 역사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면 일부만 남겨 놓은 상태다.

 

 형무소의 중앙사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간수(교도관)들의 행정실로 옥사 통제 및 감시와 함께 지하에서는 고문이 행해지던 장소이다. 현재는 관람자들에게 당시의 형무소 운영 현황, 근무 모습을 재현하고 수감자들의 생활 모습을 전시하여 보여주고 있다.

 

왼쪽 중앙사 그 뒤편의 건물이 옥사, 오른쪽이 취사장이다.

 

옥사의 벽면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조국 독립을 위해 피흘린 독립 운동가와 해방 이후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가들의 혼을 기리고 있다.

 

 수감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망루이다.

 

옥사 내부의 감방 한 칸 크기는 대략 2평 정도다. 간수들이 감방 위에서 감시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이중, 삼중의 잠금 장치와 찬 마루바닥은 당시 수감자들의 혹독한 옥중 생활을 짐작케 한다.

 

감방문 왼쪽의 세로 막대는 수감자가 간수를 부르는 장치로 패통이라 한다. 그 옆에는 수감자의 이름과 수인 번호가 걸리는 곳이다.  

 

김광섭, 심훈, 한용운 선생의 옥중 생활이 기록되어 있다.

 

김구, 여운형, 지봉하 선생의 옥중 생활도 기록되어 있다.

 

용수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을 이송할 때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머리에 씌었던 도구이다.

 

일제 강점기에 수감자들의 탈주 방지를 위해 허리에 채웠던 형구로 라고 한다. 길이 3m 무게 5kg이다.

 

일제 강점기에 사용하던 수갑이다.  

 

일제 강점기에 수감자의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던 족쇄로 발목에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