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지금에는 상상조차 힘들지만,
전화 수화기 한번 잡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일부 부잣집에서나 전화기가 사랑받던 시절에, 공중전화의 보급은 지금의 휴대전화 보급보다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80년대까지 존재했던 진한 오렌지색 공중전화기는 허름한 슈퍼 한쪽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이웃이었다.
기계식 전화기 시절에는 9번이나 0번이 들어간 전화번호는 손가락을 고생시켰다.
이후 등장한 크고 육중한 직사각형 회색 장거리 공중전화 일명 DDD는 낮은 슈퍼의 처마 밑을 벗어나 자신만의 집(전화 부스)을 갖고 도시의 곳곳을 점령했다.
때로는 각별한 소식을, 때로는 급박한 사정을, 때로는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면서 공중전화는 도시민들의 사랑과 애환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에 게으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공중전화는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고, 더불어 공중전화기 뒤로 길게 이어지던 사람들의 풍경도 사라졌다.
휴대전화기의 보급으로 공중전화는 더 이상 긴요하고 반가운 이웃이 아니다.
그래도 공중전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군인들과 같이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며 ‘드르륵 드르륵’ 돌아가던 그 시간만큼 전화기 너머 그리운 목소리는 더욱 간절해 진다.
은희경의 소설 <태연한 인생>의 첫 장면은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공중전화 부수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공중전화부수의 유리에 기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에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연녹색 원피스와 흰 스웨터 차림이었다.
한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녀의 얼굴은 희고 투명했다.”
공중전화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남아있는 영화가 있다.
이창동감독의 영화 <초록 물고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스에게 죽임을 당해
숨이 넘어가는 막둥이(한석규扮)가 그리운 가족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던 곳이 공중전화이다.
“끊지 마 성, 끊지 마 성... ...”
↘ 예쁜 공중전화가 주변에 없어서... ㅜ ㅜ
↖ 공중전화카드
다음은 2003년 대한매일 신문의 신춘문예 詩 당선작인 김경주님의 <꽃 피는 공중전화>全文이다.
퇴근한 여공들 다닥다닥 세워 둔
차디찬 자전거 열쇠 풀고 있다
창 밖으로 흰쌀 같은 함박눈이 내리면
야근 중인 가발 공장 여공들은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꾹 누른다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이빨일수록 환하게 출렁이고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흐린 백열등 속에도 눈은 수북이 쌓인다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수화기에 언 귀를 바짝 갖다 대면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 갔던 첫사랑이며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가슴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온다
작업반장 장씨가 챙챙 골목마다 체인 소리를
피워 놓고 사라지면 여공들은 흰 면 장갑 벗는다
시린 손끝에 보푸라기 일어나 있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하다
졸린 눈빛이 심다만 수북한 머리칼 위로 뿌옇다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 진다
라디오의 잡음이 싱싱하다
6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80년대까지 우리나라 무역수지의 일등 공신이었던 가발산업.
지금은 저임금 국가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어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열악했던 당시의 공장 근무 환경과 함께 사라져 가는 공중전화에 대한 생생함이 잘 묘사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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