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한 두 곳에 전당포가 있었다.
입학을 앞둔 자식의 등록금을 위해 어머니는 결혼식때 가져온 예물을 전당포에 맡겨 돈을 빌렸다.
술 값이 떨어진 대학생은 차고 있던 시계를 맡기고, 밀린 월세를 내기위해 가난한 신혼부부는 금반지를 맡겼다.
급전이 필요할 땐 입고 있던 양복이라도 벗으면 단 몇 천원이라도 빌릴 수 있었다. 돈에 쪼달리던 서민들의 금융기관 역할을 했던 전당포. 수 많은 세상 사람들의 애환을 품고 있던 전당포가 하나 둘 씩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전당포의 풍경도 바뀌고 있다.
이제는 금반지나 시계 대신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등 전자제품이나 명품백, 골프채 등 고가의 귀중품을 담보로 돈을 빌리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고가의 정보통신기기나 명품 거래가 잦아지면서 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른바 ‘IT 전당포’가 명품 전당포로 등장했고, 새로이 ‘젊은이들의 급전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 서민들의 갖가지 애환과 함께 했던 전당포가 이제는 ‘소비 지향형’ 삶을 추구하는 젊은층의 멀티숍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어느 시인의 전당포에 대한 詩 한편이다.
눈 감으면 선명히 각인되는 얼굴이 있어
금지된 경계의 시선을 전당포에 맡긴다
집 장만하느라 결혼 예물을 전당포에 맡기고
가난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시를 가지고 논 적 있었다고 변명한다, 나는
시답잖은 잔챙이 글만 되고 말고 뿌려놓는다
살면서, 맡겼다 혹은 찾아와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겠냐만
그래도 축축한 재생의 추억을 전당포에서 찾아와야겠다
굳이 전당포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맡겼다 혹은 찾아와야하는 것들은 참 많다. 그것은 단순히 돈이 되는 물질만이 아니라 열정, 패기, 정의, 사랑같은 젊은 날의 시간이다. 비록 시간이 흘러 축축한 재생의 추억들로 오랜 기억의 저편에 놓여있을 지라도 꼭 찾아와야할 것들이 분명하다. 혹 젊은날 명예 때문에 전당잡힌 사랑이 있었다면 더욱…….
하지만 영화 ‘아저씨’의 영향 때문일까? 전당포를 이용해 보지 못한 나에게 솔직히 전당포의 기억은 강렬한 원빈의 눈빛과 조용하고 음습한 분위기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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