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날 무렵,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소위 달동네라 불리는 곳 홍제동 개미마을을 찾았다.
지겨워서 떠나놓고 그리워서 눈물지어본 곳이 누구나 한 군데쯤은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미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던 고향의 고샅길, 가진 거라곤 꿈밖에 없던 곰팡내나는 청춘의 단칸방, 반복되는 일상과 가난에 찌든 삶의 무게로 휘청이며 찾아들던 변두리 골목길…. 시간을 수십 년쯤 뒤로 돌려버린 듯한 이 거리에 오니 마치 '그런 곳'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달동네에 대한 기억은 어떤 이에게는 추억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모두 추억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남은 몇 안되는 곳, 그 곳이 사라지기 전에 내 기억 한편에 저장하고 싶었다.
지하철 홍제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15분 정도 걸려 도착한 개미마을은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대다수 주민들이 떠나 버려 반폐허가 된 마을은, 막연한 추억을 찾아 온 이방인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듯 무표정이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그려 놓은 벽화가 없었다면 이 회색빛 마을은 나를 숨쉬기 조차 힘들게 하였을 지도 모른다.
얼굴을 마주해야 오를 수 있는 가파른 계단, 낡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 한편을 대신한 비닐 천막,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부러진 연탄재와 쓰레기… 같은 것들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추억이라 하기엔 너무 삭막하고 황폐했다.
요즘은 매스컴의 영향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 곳 주민들의 삶과 현실에는 관심이 없고, 폐가에 그려진 담장 벽화만이 그들의 즐거운 볼거리가 된다.
사람들에게 이 곳은 화려한 도시 관광에 식상한 이들의 또다른 이색 볼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 낡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을 대신한 파란색 비닐 천막은 여기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 보기만해도 숨이 차는 좁고 가파른 시멘트 계단이 고된 삶을 말해주는 듯 하다.
↘ 개미마을 사람들도 드넓은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고래의 꿈을 꾸었을까?
↘ 구제역이 극성인데, 그래도 이 마을의 소와 돼지는 해맑기만 하다.
↘ 맞춤법이 틀린 '동네슈퍼'는 빈지문을 내렸지만, 7번 마을버스 정류장을 알리는 'BUS STOP 7'표식이 눈길을 끈다.
↘ 페인트가 벗겨진 화장실 문과 간이 가로등이 오히려 어울려 보인다. 여기저기 보이는 가로등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반짝였으면 좋겠다.
주인이 떠난 빈집의 녹슨 우편함이 더 이상의 세상소식을 거부한다.
↘"누구냐 넌?"지붕위의 도둑고양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노려본다.
좁은 골목 사이로 홍제3동 아랫마을 인왕중학교 뒤 빌라가 보인다.
↓마을버스 종점, 버스를 기다리는 출근길 늑대 아저씨와 유아원생 토끼 어린이가 카메라를 의식한 듯 바라 본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집집이 이런 LPG가스통이 보인다.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
↘ 연탄과 운반통, 그리고 연탄집게가 참 반갑다.
개미마을 떠나오며, 사라지는 것이 모두 추억이 될 수 있는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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