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거기같은 비슷비슷한 풍경과, 기껏해야 겨우 인력거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이어지는 곳.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이 길에 들어서면 방향감각이 썩 좋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길치가 된다.
서울 도심 한복판 종로구 이화동에는 그런 골목길이 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낙산공원으로 향하면
이화동 골목길과 골목에 그려진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정부가 소외계층의 생활개선을 위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벽화 그림.
동네 풍경은 조금 부드러워졌을지 모르지만 과연 주민의 생활 환경이 나아졌을지는 의문이다.
수많은 出寫客들로 붐비는 명소가 되었지만,
오히려 나같은 귀찮은 불청객들로 인해 개선이 아닌 개악이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도심 속 몇 남아있지 않은 달동네 이화동 골목은 곧 있을 도시재개발의 미명하에 사라질 것이다.
사람 사는 냄새와 소리가 있던 '공존'은 사라지고, 편리와 이기라는 '독존'이 대신할 것이다.
토지의 합리적 이용과 효율적인 고도이용이라는 명제 아래 진행되는 도시재개발사업.
그렇다면 개발의 진정한 수혜자는 누구인가?
철거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아픔과 단절을 가져왔다.
빈민층은 단지 가난하고 쓸모없는 층이 아니다. 그들도 엄연히 사회의 일익을 담당해 왔고 도시의 중요한 기능을 분담해 왔으며 경제 · 사회 · 문화 · 역사 속에서 함께 살아온 이 땅의 국민이다.
하지만 개발의 끝에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앞집은 뒷집의 조망을 해치지 않고 옆집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온 골목길 주민들.
하지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빛바랜 벽화처럼, 그들은 이미 마음의 온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사진보다 더 오래가는 기억은 스케치다. 벽화마을로 오르는 골목길 초입의 꽃길 계단을 그려 봤다.
<골목길>
도종환詩
별 하나 눈물처럼 홀로 깜박이는 밤
가뭇가뭇한 골목길을 먼지 묻어 돌아온다
마음은 높은 곳으로 끝없이 가고 있는 동안에도
몸은 지쳐 낮은 곳으로 한없이 흘러간다
청계천 피복 근로자의 청춘을 그린 대형 벽화.
귀엽고 앙증맞고 디지털적인 그림체의 벽화가 아쉬운 이 곳에, 작가는 왜 이리 촌스런(?) 벽화를 그렸을까?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기억,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화동 벽화 여행의 마지막 작품 앞에서
'개발' 때문에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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