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 불륜, 복잡한 반전 스토리, 폭력과 자극적인 액션, 화려한 CG 영상이 난무하는 요즘 영화들 속에서,
오랜만에 무색, 무미, 무취한 무공해 영화 한편을 봤다.
얼마전 개봉했지만 흥행이 별로라서 상영관을 찾기가 힘들어진 영화 최강희 · 봉태규 주연의 <미나문방구>다.
관객이 없으니 오락적 흥행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평론가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작품성도 별로인 작품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신경쓰지 않고 맘껏 얘기해도 될만큼 평이하고 덤덤한 스토리와 영상 때문에 더욱 동화같이 순수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착한 영화다.
요즘 젊은이들의 꿈의 직업 구청 공무원인 강미나(최강희)는 순수함을 잃고 억척스럽게 현실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미나는 남자 친구로부터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고 열이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 강봉근(주진모)이 쓰러져 병원비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에서 공무수행 중 체납자와 시비가 붙어 2개월 정직처분을 받는다.
↗ 악덕 체납자와 세금문제로 싸우는 미나.
체납자로부터 물벼락 수모까지 당한 미나는 욱하는 성격을 이기지 못해 체납자의 신차 사이드미러를 자기 차로 받아 버린다. 이 일로 미나는 2개월 정직 처분을 받는다.
얄미운 악덕 체납자 역할로 나온 박영규씨, 딱 맞는 캐릭터다.ㅎㅎ
아버지의 입원으로 정직기간 동안 어쩔수 없이 ‘미나문방구’ 운영을 떠맡게 된 미나는 적자투성이의 문방구를 통째로 팔아버리려 결심한다. 미나문방구는 아버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지만 미나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생각나게 하는 그저 짜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매매를 위해 문을 연 문방구에 몰려온 아이들이 미나를 보고
“이제 누나가 주인이어유?” 하고 묻자
“내가 이딴 문방구 주인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 난 그냥 알바야~.” 하고 대답한다.ㅋㅋㅋ
↗ "안팔아! 다 꺼져."
" 내가 이딴 문방구 주인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 난 그냥 알바야~" 억지로 미나문방구를 떠맡은 미나에게 문방구와 아이들은 짜증의 대상일 뿐이다.
처음에는 돈 안되는 초딩 단골들이 귀찮아 내쫓기도 하지만, 매매를 빨리 하기 위해서는 손님이 많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동산 아저씨의 조언 때문에 미나는 ‘친절한 미나씨’로 급변한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3+1대박세일 같은 행사도 하면서 미나문방구는 어느새 하우스(?) 같은 아이들의 아지트가 된다.
의도치 않게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하나씩 쌓여 추억이 되면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추억과 순수함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미나.
↗ 문방구를 빨리 팔기위해 미나의 꼬임(?)에 빠져 전략적으로 모인 아이들로 미나문방구는 '하우스(?)'가 되었다.
영화속 도박에 가까운 여러 게임들은 잊혀진 어린날 추억의 게임들이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인 최강호(봉태규)는 모교의 4학년 3반 담임으로 부임한다.
미나와 달리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들을 더 떠올리며 기뻐하는 강호.
문방구 앞 게임기에서 최고점수를 올리고 자신의 이니셜 CKH를 새겨넣는 것이 행복한 초딩같은, 하지만 자라나는 새싹들이 꺾이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픈 아직 순수한 선생님이다.
미나와 강호. 오해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티격태격 싸움으로까지 번지지만 알고보니 그들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다.
문방구집 딸이라는 이유로 학창시절 내내 ‘방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미나, 엄마가 다방을 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던 강호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추억처럼 오고간다.
↗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 매니아인 최강호. 1등을 한 후 게임기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 CKH를 새겨넣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2D게임기- 문방구점 앞에는 꼭 있어야 할 품목이다.
↗ 티격태격 싸우던 강호와 미나는 초등학교 동창 사이로 쫀드기를 구워 소주를 먹으며 서로의 추억을 이야기 한다.
불량식품(?) 쫀드기는 연탄불에 구워 먹어야 제맛이다.
과거에 왕따 소년 강호가 있었다면 영화속 현재에는 소영이라는 왕따 아이가 있다.
소영이는 달리기를 잘하지만 반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심지어 미나문방구에서는 몰래 학용품을 훔쳐가는 비행 소녀이다. 하지만 물건을 훔치다가 선생님에게 걸려 문방구에 끌려간 소영이 하던 말,
"할아버지가 훔친 게 아니라 외상 가져간 거라고 했어요, 장부도 있다고… .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던 건 저였어요…
훔친 게 아니예요. 가져간 건 여기 다 적어 놨어요."
취업하면 다 갚겠다며 소영이는 그동안 적어놓은 외상장부를 꺼내보인다. 가난한 소영이의 도둑질을 눈감아 줬던 인정 넘치는 봉근아저씨(미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이었던 장면이다.
↗ 리코더를 훔치다 걸린 소연이를 감싸는 담임 선생님 강호와 싸우는 미나.
영화 속에는 이들 주연 말고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오성문방구집 형제 아이들이 있다.
미나문방구와 오성문방구는 일종의 경쟁관계로, 처음엔 오성문방구집 형제들은 은근히 미나의 영업을 방해한다.
하지만 손님이 많아져야 빨리 문방구가 팔린다는 미나의 말에 열심히 미나문방구를 위해 호객행위와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한다.
하지만 종국에는 미나가 눌러앉는 바람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아, 이건 스포일러...ㅎㅎ)
↗ 미나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오성문방구 형제들은 눈물을 삼키며 복수를 다짐한다.ㅋㅋ
<미나문방구>에는 누구나 아는 배우들이 카메오로 등장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권해효는 미나의 직장 상사로 출연하고 박영규는 구청 공무원 미나로부터 끈질긴 세금 납부
독촉을 받는 악덕 체납자 이재근으로 특별 출연했다. 또 요즘 tvN 'SNL코리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원해는
미나문방구에 추억의 간식거리를 공급하는 식품 거래처 직원 장만석으로 출연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코믹 연기의 일인자 임원희는 영화 막판에 구청 민원실의 동전을 훔치는 카메오로 깜짝 등장해 큰 웃음을 자아낸다.
누구나 가슴 속에 자기만의 추억의 장소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추억이 많다, 라는 말은 그만큼 많은 장소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고나니 초등학교 시절, 형형색색의 화려한 학용품과 온갖 신기한 장난감이 넘쳐나고 한편에서는 새콤달콤한 불량식품(?)과 게임기가 유혹하던 ‘보물창고’ 같던 그 시절 문방구 풍경이 그리워진다.
<미나문방구>는 영화를 만든 정익환 감독의 바램처럼 그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과 살아있는 추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추억의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미나문방구>를 꼭 추천하고 싶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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