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을 엿보다/일러스트 l 만화

[컬러링11] 공중전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그리워 지는 곳

 휴대폰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지금에는 상상조차 힘들지만, 전화 수화기 한 번 잡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일부 부잣집에서나 전화기가 있던 시절에 공중전화의 보급은 지금의 휴대전화 보급처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80년대까지 존재했던 진한 오렌지색 공중전화기는 커다란 슈퍼 한편에서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이웃이었다. 그나마 십원 짜리 동전으로 시내 통화만 가능했던 기계식 전화였던 그 때 그 시절에는 9번이나 0번이 들어간 전화번호는 손가락을 고생시켰다. 이후 등장한 크고 육중한 직사각형의 은빛 장거리 공중전화 일명 디디디는 낮은 슈퍼의 처마밑을 벗어나 자신만의 집을 갖고 도시의 곳곳을 점령했다.

때로는 각별한 소식을, 때로는 급박한 사정을, 때로는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면서 공중전화는 도시민들의 사랑과 애환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에 게으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공중전화는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고, 더불어 공중전화 부스 뒤로 길게 이어지던 사람들의 진풍경도 사라졌다. 휴대폰의 보급으로 공중전화는 더 이상 긴요하고 반가운 이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르륵 드르륵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며 기다리던 전화기 너머 그리운 목소리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득 공중전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 장면이 생각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초록물고기의 마지막 장면. 보스에게 죽임을 당해 숨이 넘어가는 막둥이(한석규)가 가족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던 공중전화. “끊지 마 성, 끊지마 성... ...”